셀 사역

제목2019년 12월 22일 (넷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5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성탄절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나누어봅시다.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100장: 미리암과 여인들이
● 복음성가: 예수 하나님의 공의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비정상을 정상으로
● 본문 : 마가복음 12:1-12

1) 본문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나요?
⓵ 마가복음 11:15-18절을 읽고 본문의 배경을 설명해봅시다.  

2) 본문 해석
⓵ 비유 형태로 된 본문의 이야기를 설명해봅시다.
  -포도원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농부들은 누구입니까?
  -주인의 명령으로 소출의 얼마를 얻기 위해 포도원 농장에 찾아갔다가 변을 당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⓷ 위의 내용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해석해봅시다.
  

3) 위의 해석을 통하여 대림절 네 번째 교훈을 찾아봅시다.
⓵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의 행동을 대조하여 설명해봅시다.  

4)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성탄절 예배를 통해 아기 예수님만을 주인 삼는    절기가 되도록
2) 2020년 1월 5일 제 12회 사무총회를 위하여
3) 2019년을 은혜로 잘 마무리하기 위하여


셀 사역

1) 공 예배 준수하기
2)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3) 셀 예배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이 있게 드리기
4) 리더와 인턴을 위해 중보하기
5) 12월 사역에 적극 동참하기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요약
  제목: 비정상을 정상으로
  본문: 마가복음 12:1-12
  서론)  
  오늘 대림절 네 번째 주간 키워드는 ‘정상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의 의미를 아주 중요한 팩트로 설명하자면 저는 마땅히 비정상적인 세속의 영역을 정상으로 바로 잡기 위한 행보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성육신은 정상화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때 모 전직 대통령이 화두로 끄집어냈던 상용어가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화두가 가졌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비정상의 정상화’ 자체가 비정상이었다는 점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해주었다는 점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이런 말장난의 정상화가 아닌 성경이 제시하는 정상화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 11:15-18절에 기록된 소위 말하는 성전 청결 사건 이후의 후폭풍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도권 종교의 수뇌부에 종교적인 권력과 안락함의 극치를 누리고 있던 산헤드린 공회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성전 청결 사건에 대하여 대단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가복음 11:28을 읽겠습니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산헤드린 종교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종교적인 힘을 ‘권세’로 생각했습니다. 본인들의 힘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데에 목을 걸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저의가 악한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슨 권세로 이런 일(성전 청결 사건)을 하는가?’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요한의 세례 행함을 갖고 그들의 공격에 방어합니다. 마가복음 11:30-32절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무슨 말입니까? 요단 강가에서 요한이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세례의 권위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물으신 것입니다. 정곡을 찌르시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났다고 하면 종교지도자들은 매우 곤란해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동안 보여 왔던 행보는 하늘의 권세를 무시했던 일이 되는 셈이고, 예수의 권위를 당연히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난처함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고 할 때는 세례 요한을 따르는 자들의 반발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유대 종교 수뇌부는 군색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 그러면 나도 너희들에 내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답할 이유가 없다고 선언하시며 보기 좋은 1:0의 승리를 거두신 주님께서는 이제 오늘 본문을 하나의 비유로 대신하며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결정적 비수를 날리셨습니다.
  이제 본문의 스토리를 해석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아름다운 선민 공동체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공동체를 통해 그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아름다운 열매를 얻도록 종교지도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열매를 맺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로 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잘 성장하도록 일을 위임받은 유대 종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격하는 우상 공동체로 변질되었고 그 한 복판에는 자기중심적인 유대적인 교리를 만들어 종교의 철옹성을 만들었고 급기야 그것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갖고 호의호식하는 직업적인 종교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타락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설 것을 기대하면서 그것을 가르치는 수많은 당신의 종들인 선지자, 예언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듣고 종교지도자들이 생각을 바꾸고 회개한 뒤에 돌아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파송하셨는데 도리어 사악한 선민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죽이며 하나님의 뜻을 묵살했습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하나님은 이제는 마지막으로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를 포도원으로 보내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내 아들의 말을 들을 것이라는 순진한 마음으로. 그런데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사악한 유대 신앙공동체의 기득권 종교지도자들은 아예 예수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죽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들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그를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절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여서 아예 밖으로 내던져 버릴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확인사살을 할 것에 대한 천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경험하실 것을 안 하나님은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아들을 죽이고, 보낸 선지자들을 멸시한 자들을 진멸하시는 프로젝트를 반드시 실천하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마가를 통해 본문에서 던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메시지의 압권은 촛대를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서 다른 신앙공동체로 넘길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의 해석을 통해 잊어서는 안 되는 대림절 4번째 주일에 주시는 영적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① 한 종을 보냈습니다. (2절) ②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4절) ③ 또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5절) ④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습니다. (6절) 여러분은 포도원 주인이 행한 스토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악한 농부들이 그를 때려서 보냈습니다. 비정상적인 행위였습니다.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낼 정도로 더 큰 타격을 주고 그도 돌려보냈습니다. 조금 더 강해진 비정상적인 행위였습니다. 또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죽였고, 또 다른 종들의 일부는 타격해서 보냈습니다. 조금 더 강력해진 비정상적인 행위였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결정적으로 주인의 유산을 상속받을 자인 아들을 악한 농부들은 가장 질 나쁜 방법으로 그를 살해했습니다. 아들을 죽인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겠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가장 악한 비정상적인 행위라고.
  여기까지만 보면 참 우울합니다. 대단히 참담합니다.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런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 9절을 다시 읽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주인의 최종적 결단입니다. 앞에서 말한 권세의 의미가 아닌 주군으로서의 권위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가장 악한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로 다시 최종적인 정상으로 돌려놓으신 일하심이라고.
  우리는 아들을 보낸 포도원 주인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을 보내는 희생을 했기에 하나님은 비정상적인 악함의 실태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희생을 전제한 구속사의 과정이 바로 이 땅에 주님이 오신 사건이며 동시에 그 사랑의 의미를 심비에 새기는 절기가 대림절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엉클어져 있고, 비뚤어져 있으며, 망신창이가 된 이 땅의 수없이 많은 비정상의 질곡들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여러 가지의 방법을 동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양심에 희망을 걸어보시기도 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율법을 제정해 보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이집트의 바로와 같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거부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아픈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비정상으로 망가진 이 땅의 비극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급기야 아들을 보내시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아들을 보내시기로 결심한 것은 곧 아들을 죽이시기로 결심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대림 절기는 하나님의 그 절박했던 심정을 이해하는 기간이자 숙고의 계절인 것입니다. 성탄절은 주님의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내 구주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비정상화로 변질된 내 자아를 하나님의 원래의 형상으로 돌이키겠다는 선언의 날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론)  
  교회 공동체에게 주님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시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염려하고 또 염려하는 것은 그렇게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택한 교회 공동체가 다시 유대 종교 공동체를 방불 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또 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인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교회만의 안락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인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으로 둔갑하여 마치 그것이 상식인양 변질된 괴물들과 투쟁하는 군사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종교 지도자들의 관계를 이렇게 기막힌 성찰로 갈파했습니다. “예수는 진리로 권위를 삼았지만,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권위를 진리로 삼았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들이여! 대림절 넷 째 주간과 성탄의 계절을 권위를 진리로 둔갑시킨 비정상적인 교회의 일체를 예수라는 진리로 권위를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교회가 세인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