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9년 10월 20일 (셋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집안 정리를 할 때, 버리는 물건과 남겨놓는 물건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십자가를 내가 지고 - 461장
● 복음성가: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자랑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 본문 : 갈라디아서 6:14
1) 첫 번째,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⓵ 주제 문구를 설명해봅시다.
⓶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성경의 내증을 통해 설명해봅시다.
  -창세기 19:26:
  -디모데후서 3:2-5:  

2) 두 번째,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⓵ 주제 문구를 설명해봅시다.
⓶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다음을 통해 설명해봅시다.
  -이아든 토저:
  -누가복음 15:28-32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이 나라의 하나 됨을 위하여. 
2) 한국교회가 나라의 중보자로 서도록
3) 어려움을 당하는 교우들의 회복과 교우들의 범사를 위해 (환우, 타지에 있는 지체들, 대학입시, 군에 있는 자녀들) )
  (이장규, 신요한, 김진현) (이한빛 신예찬 김혜원 정영민 정윤서 우혜민)
4) 재능 기부 3차 사역 및 10월 사역을 위해
5) 세인교회가 시대를 역행하는 주존심으로 굳건히 서도록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대학원 강의, 후반기 사역의 승리 등)


셀 사역

1) 새벽예배에 리더들 자원함으로 드리기
2) 공 예배 준수하기
3)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4) 셀 예배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이 있게 드리기
5) 리더와 인턴을 위해 중보하기
6) 가을 목장 대심방 기도로 준비하기
7)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 요약   
본문 : 갈라디아서 6:14
제목 : 자랑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서론)
  하나님의 관계에서 신자들이 그 부르심에 진실하게 응답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홀로’의 관계가 아니라 ‘더불어’의 관계로 살아내는 것에서 증명됩니다.   
  브룩힐즈 교회를 담임하는 데이빗 플랫이 섬기고 있는 성도 부부의 위대한 삶의 혁명을 소개한 글을 소개합니다. 제이콥과 스테파니 부부는 더 큰집을 지어 이사를 하려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들 부부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세상적인 목표를 향하여 무작정 달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열어 거룩한 계획을 보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설령 여태 꿈꾸어 왔던 것을 포기하라고 해도 따르겠다고요.”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셨습니다. 다들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데 선뜻 부모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스테파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수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눈물이 솟구치더군요. 더 큰집을 지을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는 게 더 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뜻을 모은 부부는 즉시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입양하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널찍한 집을 구하는 쪽과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살던 곳보다 더 작은 집으로 옮겼습니다.
  제이콥과 스테파니 부부의 삶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자로서 가장 아름답게 응답한 신실한 증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론)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는 것이 성도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명확하게 본문 하반절이 대답해 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불편하게 여겨지는 일체의 것들에게서 떠나는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 우리들이 지나온 흔적을 돌아볼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매단 일들이 허다하지 내가 사랑하는 세상을 십자가에 매단 일이란 거의 찾기가 어려운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십자가에 매달리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세상이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일까? 창세기 19:26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그녀는 왜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을까? 떠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에서 머물고 싶어 합니다. 이 말은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말로 직결됩니다. 내가 배웠던 언어, 내가 참여했던 문화, 내가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과 연대를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입니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거부,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참여에는 대단히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보수적으로 살고 싶어 하고 거기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익숙한 것에 대한 머묾과 안주함에서 떠나라고 경고한다는 점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2-5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것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쾌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불편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대비를 통하여 바울이 양아들 디모데에게 독려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익숙해서 사랑하는 것들에서 돌아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불편하게 여겨지는 일체의 것들에서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혹시 여러분을 육체적으로 익숙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혹시 여러분들을 안주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혹시 여러분의 정욕을 채워주는 것입니까? 그것이 여러분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까?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 매다십시오. 그리고 그것들에게서 돌아서십시오. 바로 이것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기뻐하실 만한 일체의 것들을 이 땅에서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몇 년 전에 아이든 토저가 쓴 ‘십자가에 못 박혀라’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지금처럼 ‘재미’에 몰두한 적이 없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재미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을 향해 전진하려면 재미를 제물로 드려야 한다. 기독교는 상점의 진열대에 놓인 상품이 아니기에 말이다.”(아이든 토저, 십자가에 못 박혀라, 규장, 2015년,p,195) 이 글은 아이든 토저가 20세기의 미국 교회를 대상으로 선포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렇다면 1세기 전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한국교회는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땅을 치는 애통함으로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세상이 느끼는 기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느끼는 기쁨을 보고 있습니까?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큰 소리 뻥뻥 치면서도 우리는 혹시 전자에 목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에 하나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일 리 없습니다. 당신은 헛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28-32을 살피겠습니다.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거지꼴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에게 시비를 거는 큰아들과 아버지의 대화입니다. 큰 아들의 시각은 내가 기쁘지 않다는 스펙트럼에 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각은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기쁨,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기억합시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는 아버지의 기쁨에 천착하는 자임을. 내 기쁨에 만족하는 자는 전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뜻에 무관심한 자임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토대로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의 기쁨을 찾는 자인가? 아니면 나의 기쁨을 찾는 자인가? 갈라디아서 1:10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사역자로 서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음을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 분명히 한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역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종이 되겠다고.
  오늘 주일 설교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도 십자가를 자랑하는 정도가 아닌 십자가에 나를 못 박는 삶을 살기 위해 주님의 기쁨을 추구하며 사는 백성이 되겠다고 다시 한 번 나의 결단을 재확인하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랑하는 상대방이 무엇을 기뻐할까에 모든 마음을 빼앗깁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죽으셨습니다. 더불어 그 일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마땅합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하나님이 불편해 할 만한 일체의 것에서 떠나십시다. 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을 이 땅에서 이루며 살아가십시다. 바울은 먼저 그 삶을 살아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