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9년 10월 6일 (첫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3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이 왔습니다. 당신은 어떤 열매를 볼 때 감동을 받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새벽부터 우리 - 496장
● 복음성가: 내 주의 은혜 강가로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그래도 끝까지 심어야 합니다.
● 본문 : 갈라디아서 6:7-10
1) 본문을 해석해보겠습니다.
⓵ 본문 7절에서 잘 심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⓶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는 무엇인가요?
➂ 본문 9절을 적절히 해석해봅시다.
⓸ 본문 10절의 권면은 무엇인가요?  

2) 본문 해석을 통해 영적 교훈을 찾아봅시다.
⓵ 첫 번째는 무엇인지 설명해봅시다.
⓶ 두 번째는 무엇인지 설명해봅시다.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한빛 농장에 어려움이 없도록 (이 땅의 모든 축산업이 어렵지 않도록) 
2) 피선교지를 위하여 (군산 반석교회, 대전 수정교회 중보) 
3) 환우들을 위해 중보 하되 암 투병 중에 있는 황홍일 집사님의 치유를 위하여
4) 재능 기부 3차 사역 및 10월 사역을 위해
5) 군에 있는 자녀와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이장규, 신요한, 김진현) (이한빛 신예찬 김혜원 정영민 정윤서 우혜민)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셀 사역

1) 새벽예배에 리더들 자원함으로 드리기
2) 공 예배 준수하기
3)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4) 셀 예배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이 있게 드리기
5) 리더와 인턴을 위해 중보하기
6) 가을 목장 대심방 준비하기
7)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 요약
본문 : 갈라디아서 6:7-10
제목 : 그래도 끝까지 잘 심어야 합니다.

  서론)
  지금 제가 강의하고 있는 클래스에 등록하여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은 야간 신학대학원생입니다. 아마도 6학기 째 즉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저녁 시간을 바쳐 공부에 올인 하고 있는 주경야독의 주인공들이기에 대단히 곤비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만으로도 저는 학생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또 그들에게 적어도 실망을 주는 선생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금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앞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종들인데 학생들이 나아가야 하는 현장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비극적인 정글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저는 선배들이 한국교회를 위해 눈물로 씨를 은혜로 받은 목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신학도들에게 저는 너무 미안한 선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열매로 남겨줄 씨앗은 고사하고 저들이 헤쳐 나아가야 할 무거운 짐만을 남기게 된 선배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클래스에 들어와 그래도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제자들을 향하여 그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데 남겨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실은 너무나 창피하고 속이 상합니다. 심었어야 무언가를 줄 수 있는데 심은 게 없으니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지금도 목회를 하면서 나는 무엇을 뿌렸는가를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 무엇을 뿌리는 목사로 살 것인가를 매우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목사인 저에게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주는 본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시에 설교를 듣는 교우들에게도 정말로 가슴에 담지 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제시하는 본문입니다.   

  본론)
  본문 7절을 읽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바울은 이렇게 대 전제를 하며 선언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간에 그 심은 것을 토대로 그대로 거두게 된다고. 이것처럼 명확한 진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연의 법칙은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이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게 하는 것이 법칙입니다. 이것을 순리라고 말합니다.
  본문 7절의 문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다시 7절을 언급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표명한 이유는 잘 심으라는 속뜻이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잘 심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 심는 것이 절대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하나님을 능멸하는 일임으로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결국 무슨 의미입니까? 잘못 심는 행위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는 말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 즉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그 답을 8절이 아주 명학하게 제시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일체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역설하면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행위는 반드시 썩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존중하는 씨 뿌림을 바울인 대조적으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얻게 될 복을 바울은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대조를 통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결코 육체를 위하여 씨를 뿌리거나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삶을 명령하면서 본문 9절에서 이 삶의 행위가 결코 만만한 삶이 아님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구절에서 ‘선’이라는 대표적인 의미로 번역된 헬라어 ‘칼로스’를 저는 더 잘 애용하는 의미로 다르게 번역합니다. ‘똑바름’(righteousness)입니다. 우리가 똑바르게 살되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똑바로 산 것에 대한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본문 9절을 해석하면 적절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이 교훈을 전한 바울은 본문 마지막절인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함으로 본문 단락의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 똑바름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실천해야 하는 일임을 바울은 역설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본문 단락 해석입니다.
  이제 해석을 통한 영적 교훈을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성도가 똑바로 사는 것, 교회가 똑바로 사역하는 것, 목사가 똑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성도나, 목사나, 교회가 똑바르게 살지 못한다는 말이 또 무슨 뜻일까요?
  1)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똑바르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앞선 본문 주석을 통해 살폈듯이 이 테마는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가 되는 것이요, 반드시 썩는 것을 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행위, 즉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는 행위는 오늘 우리 시대의 표현으로 무엇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요? 
  ※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일체의 행위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교회를 무너뜨렸던 무기가 할례 준수요 율법 지키기였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이것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명한 저의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적인 주도권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잃어버린 교권을 다시 찾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들춰보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았던 일체의 무리들은 언제나 그 저의가 사악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스라엘 광양 공동체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기사가 실려 있는 텍스트입니다. 출애굽기 32:1절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을 압박했던 이스라엘 공동체가 말한 명분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위하여’였습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이 해괴망측한 일을 행한 장소는 시내산 밑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모세는 산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동체가 광야에서 시작하여 가나안 입성에 이르기까지 선민 공동체가 지켜 나아가야 할 10가지의 법을 부여 받고 있었을 때라는 아주 묘한 상황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10가지의 계명 중에 두 번째 계명에 집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20:4절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의 데칼로그(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의 대 선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를 위하여’입니다. 그러므로 금송아지는 인간이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 버린 욕심 덩어리의 절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체의 행위는 반드시 썩어지는 것을 심는 일임을 명심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똑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앞의 해석과 같은 맥락에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않는 일이며, 그 결과 영생을 거두게 되는 심음임을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5:26절에 집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이 행하실 사역은 ‘주군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성자 예수님의 증언의 영이셨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할은 주군에 대한 보증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좌고우면하지 않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내 수단이 아닌 나의 목적으로 삼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저와 여러분의 궁극적인 목적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곳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중보하고 최선을 다하는 곳입니다. 한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를 목적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100% 확신하며 이 사역에 목숨을 거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나의 주군이신 하나님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자만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사역입니다. 교회의 일체의 사역은 나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사역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똑바로 심는 일이며 성령을 위해 심는 일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잘 심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만이 목적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아닌 예수님만이 목적인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변화산상에서 베드로에게 들린 소리와 마지막 환상을 마가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마가복음 9:7-8절입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